성서대학

20. 지혜의 왕 솔로몬의 실정

2016.09.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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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상 12:3-4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우리에게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호와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누구보다 나라를 잘 다스렸고 말년에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우상을 섬긴 것 이외에는, 하나님 앞에 선하게 인정받는 왕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솔로몬에 대한 상식이다. 성서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성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 최초로 중앙 성소를 확립한 솔로몬에 대해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실정에 대해 침묵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은 자제하지만 그의 실정을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서는 그의 첫 번째 실정을 행정구역 개편(왕상 4:7-19)으로 보도하고 있다. 솔로몬이 기존의 지파체제를 개혁하여 유다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모두 12개로 개편하였다. 솔로몬의 행정구역 개편 이유는 지파체제를 약화시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러한 정책은 다윗이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시행하였던 남북 화합정책에 정면 배치되는 남북 차별정책으로, 12개 행정구역에서 감당하였던 왕과 왕실의 운영을 위한 세금 징수에서 유다가 제외되어 있어 조세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을 시행하였었다. 이러한 솔로몬의 남북 차별정책은 나머지 지파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왕국분열의 큰 원인이 되었다. 또한 솔로몬 시대에는 여호와의 성전 건축과 자신의 궁전 건축 이외에 여러 건축공사가 있었다. 바로의 공주와 그 밖의 정략결혼한 공주들을 위한 궁전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였다. 솔로몬의 역군 정책도 북쪽 지파에 차별적인 과중한 부담을 주어 유다와 비유다지파 사이에 갈등의 골이 패어 치유할 수 없는 선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외 솔로몬이 엄청나게 거둬드린 세금으로 일부 측근들은 부유한 삶을 누렸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국가의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러 급기야 영토의 일부분을 양도하는(왕상 9:10-14)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비록 여로보암과 같은 일부 북쪽 지도자의 항거가 있기는 했지만(왕상 11:26-28) 실패로 끝나고 왕국 분열의 불씨를 안은 채 솔로몬 시대는 끝나게 된다.
    본문은 솔로몬이 죽은 후 북이스라엘 지역으로 가서 왕으로 인준을 받으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 곳 사람들로부터 차별정책 대신 화합정책을 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만일 르호보암이 북쪽 지파의 요청을 거부하고 기득권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별정책을 고수한다면 왕국은 필연적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솔로몬이 뿌려 놓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지혜의 왕 솔로몬의 실정은 분열을 조장할 경우 필연적으로 분열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지역분열을 조장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필연적 분열이라는 비극적 미래의 도래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