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21. 남, 북 왕국 비교

2016.09.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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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상 12:18-20 “르호보암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솔로몬의 비유다지파 차별정책으로 말미암아 남북 분열의 기운은 솔로몬 시절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 마침내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라가 분열하게 된다. 현재 우리 나라의 실정도 남과 북이 분열된 상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과 한반도의 남북분열은 많은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성 때문에 이스라엘의 남북 왕조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어왔다.
    우선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남쪽에 속해 있고 지난 세기 동안의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북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북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판단을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스라엘의 남북관계는 우리와 같이 자유왕래가 불가능했고 남북사이의 이질감도 우리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한 예로 북왕국에서 사회정의를 외쳤던 예언자 아모스는 남왕국 드고아 출신이었으며, 북왕국에서 활동한 엘리야는 이세벨의 탄압을 피하기위해 남왕국 브엘세바까지 도망하였다. 엘리야가 거기서 더 남쪽 시내산까지 도망했던 모습에서 당시의 남북 왕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신전을 세웠을 때 굳은 신앙의 소유자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모습도 그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남북관계가 우리와 다른 또 한 예로는 우리 나라의 경우 북쪽이 산이 많고 남쪽은 평야가 많은 지형이지만, 이스라엘은 반대로 북쪽에 비옥한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대평원이 위치하고 남쪽에는 변변한 평야가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밖에 교통로도 우리의 경우는 지형적으로 남쪽이 훨씬 발달하였지만, 이스라엘은 북쪽이 사통오달 뚫려 있는 여러 국제 무역로가 지나고 있어 개방적이고 무역수지도 남쪽보다 크게 앞서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두 나라가 공존한 분열왕국시대의 대부분은 북이스라엘이 남 유다에 비해 월등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었고 여로보암 2세(782~742 B.C)때 그 절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된다. 북이스라엘은 이러한 개방성 때문에 활발한 물물교류와 더불어 행해진 문화, 종교 교류로 말미암아 남쪽에 비해 극심한 종교적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고 남쪽은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형으로 말미암아 비교적 종교적인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이후 모두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했는데 개방적인 성향의 북쪽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에 쉽게 동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종교의 순수함을 유지하였던 남유다는 종교로서 위기의 역사에 대항하여 오랜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남유다 백성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저력은 종교의 순수함을 가지고 견디어왔던 수난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